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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vorite diary

자본주의와 사랑에 대하여

계룡산도예촌 가는 길에 소품 수집가의 집이 있다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어. 죽을 때 사랑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 (영화, '사요나라 이츠카' 중)

사랑을 한다, 라고 할 때, 엄밀히 말해 사랑을 받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인식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남자들은 자신의 지위의 사회적 한계가 허용하는 한 권력을 모으고 돈을 장악하고, 여자들은 몸을 가꾸고 치장을 하는 등 매력을 소유하려 애쓴다. 그들은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며, 단지 사랑할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에서 결정되는 상품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버려놓기 전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행복한 감정이 차고 넘쳐, 대상에 상관없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 '사랑'이다. 물처럼 자연스러운 넘침으로 인해 아무런 조건 없이 주변을 적시는 것, 그게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은 언제나 일방적이며, 무조건적이고, 곁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내 안을 사랑으로 채울지... 이것뿐이다. 감사와 배려, 느림과 너그러움... 기다림과 사소한 만족 등으로 채우고 쌓으면 되지 않을까. 아, 그리고 겸손이 필요할 것이다. 잔을 기울여야 따를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