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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사소한 가을 이도 저도 마땅치 않는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김사인, '조용한 일' 중) 청암사 계곡 깊이 물든 고운 단풍 바라보며 아내가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아이들 키우며 살았다면... 지금부터는 아이가 되어버린 부모님을 보살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 말이 참으로 고맙다. 부모님이 그 일을 마치고 아이가 되었듯이 우리도 그 일을 해야 할 시기에 와 있는 것이다. 사람은 제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슬며시 일러주는 아내가 고맙다. 이렇게 고마운 일은 사소한 것이다. 얼마 뒤 누나로부터 전해 듣다. 늦은 가을 수도산자연휴양림에서 아들 내외와 보낸 사소한 하룻밤이 그렇게 좋았.. 더보기
나이 들어서 하면 안되는 일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 년이나 이백 년쯤 아니라면 석 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김사인, '풍경의 깊이' 중) 나이 들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지만... 이제는 풀밭에 벌러덩 누워 그 일을 해보고 싶다. 쌓기만 했던 지금까지의 태도를 버리고, 그동안 이루었던 꿈들 혹은 이루지 못했던 꿈들도 모두 버리고... 아직 화해하지 못한 우정과 전해주지 못한 사랑도 더 이상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이제는 하나둘 내려놓으며 원래의 '나'로 살아야 하는 때가 되었다. 외면을 버려야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는 법이다. 다양한 이름으로 빛나던 포장지가 제거된 후,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상상하며, 그냥 토끼풀 밭에 벌렁 눕다. 더보기